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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 깊은 사유의 바다에서 존재를 길어 올린,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적 서정시-

 

 

                                          

 

 

 

 

1. 추상적 사유의 세계를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 것인가?

 

  이 영화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형식적 난제가 있다. 촬영을 허락받는 자리에서 김우창은 최정단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데,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영화가 될 텐데, 일상이 무슨 영화가 되겠느냐고.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이 작품이 끝내 정면으로 부딪쳐야 했던 질문 그 자체다. 갈등도, 반전도, 극적 사건도 없는 한 노학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두 시간 가까운 서사로 조직할 것인가.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이 질문에 이야기가 아니라 리듬으로 답한다. 영화는 강연 아카이브와 현재의 관찰 기록을 두 개의 결로 교차시킨다. 하나는 문학과 철학, 과학과 예술을 넘나든 사상가로서의 궤적을 담은 오래된 강연 영상들이고, 다른 하나는 계단이 많고 지붕이 새는 낡은 집에서 아내 설순봉과 보내는 노년의 하루하루다. 이 교차는 극적 긴장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한 인간의 생각과 삶이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구조에 가깝다. 사유의 세계는 흑백필름으로, 일상의 삶은 컬러필름으로 구분했다. 감독은 21년이라는 촬영 기간 자체를 편집의 재료로 삼아,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누적을 서사의 동력으로 세운 셈이다.


 

 

2. 이미지가 사유를 담아내는 방식


 

                                                               

 

  이 영화가 인물 다큐멘터리로서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카메라의 태도다. 내레이션으로 인물을 설명하거나 전문가 인터뷰로 업적을 평가하는 방식 대신, 영화는 대체로 관찰자의 거리를 유지한다. 스승 김우창의 사유방식과 같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과 담쟁이덩굴이 뒤덮이는 여름을 지나며 반복되는 일과, 병원에서 의사가 읊는 질병의 목록을 말없이 듣는 순간, 홀로 집안일을 감당하는 손의 움직임 같은 장면들이 설명 없이 배치된다. 카메라가 이렇게 물러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적 공간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촬영 대상과, 그런 그를 20년 넘게 설득하며 곁을 지킨 감독 사이의 특수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영화는 인물을 규정하거나 해설하기보다, 그저 오래 지켜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신뢰를 화면에 남긴다.

 

  편집 역시 이 절제를 지탱한다. 촬영에 21년, 그 중 편집에만 8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제작 과정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질감 자체에 새겨져 있다. 사건을 압축해 극적으로 몰아가는 대신, 계절의 순환과 노화의 더딘 진행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편집의 호흡은 관객에게도 인내를 요구한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몰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더딘 리듬이야말로 이 작품이 채택한 미학적 선택이며, 동시에 감독이 스승을 대해온 태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이라는 개념을 대사나 자막으로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개념이 화면의 질감으로 스며 나온다는 데 있다. 그가 말년에 문광훈과의 대담에서, 이성은 세계의 경이에 이르는 길이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힘이라고, 그리고 그 자유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자유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 영화는 이 사유를 인용으로 전달하는 대신, 낡은 집 안팎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위태로운 걸음, 오래된 사물들 사이의 정적, 부부가 나누는 사소한 일상적 대화의 리듬으로 번역해낸다.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이 이 작품을 두고 이미지의 철학적 깊이와, 육체의 나약함을 이긴 정신의 승리를 언급한 것도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관념을 이미지로 번역해낸 드문 인문학 다큐멘터리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사유를 통해 존재를 길어 올린 시인


                                                       

                                                                

 

  이 지점에서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구분한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의 대비를 하나의 해석적 렌즈로 가져와볼 수 있다. 다만 이는 김우창의 사상이 프롬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영화가 포착한 삶의 결을 읽어내는 하나의 시선이다. 영화 속 낡은 집의 물건들은 소유를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맺어온 관계의 흔적으로 카메라에 담긴다. 이 장면들을 존재 양식이라는 틀로 읽으면, 영화가 왜 그토록 오래, 그토록 조용히 사물과 공간을 응시하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즉 프롬은 감독의 카메라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하나의 창이다.

 

  눈 쌓인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 대문 밖 신문을 가지고 오는 아침 루틴, 마치 깊은 숲 속을 연상시키는 북한산 자락 자연의 사계가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일상, 책장 사이를 오가는 손, 다친 아내를 위해 비 오는 비탈길을 내려가 과일을 사오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조용히 고양이를 응시하는 그 시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사물과 존재의 지평』 몇 문장 타이핑 후, 좀처럼 더 나아가지 않는 문장들을 카메라는 조용히 담는다. 이 영화는 잔잔한 일상적 삶의 결을 통해 인물의 내면에 가닿은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미 존재로서 삶을 살아내는 ‘인간 김우창’을 드러내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 저서를 이제 막 시작하면서 고투하는 장면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그는 나이 들어 이제 더 이상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탄식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쇠약해져가는 육체를 다독이며, 여전히 삶이 계속될 것처럼 방대한 사유의 첫 장을 펼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순간이 영원’이라는 릴케의 시구처럼,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삶 자체이다.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계속 생각하고, 그 사유를 글로 쓰려는 학자적 삶이다.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지식은 소유되는 순간 이미 죽은 것이 되고, 존재 양식에서 앎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활동으로 남는다. 이 영화가 굳이 완성된 저 서가 아니라 미완의 원고를 클라이맥스처럼 배치한 선택은,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전체의 시선을 요약하는 장면이라 할 만하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이나 한 공간에 대한 고집이 그 자체로 항상 존재 양식을 뜻하지는 않는다. 낡은 것에 대한 집착 역시 얼마든지 소유적 삶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런 오해를 피해가는 것은, 인물이 사물이나 공간 자체에 집착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들과 맺어온 관계와 시간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유와 존재를 가르는 것은 결국 가진 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가라는 프롬의 원래 논지에 이 영화는 정확히 부합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롬은 감독의 카메라가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지, 인간 김우창이 지향한 삶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하나의 시선이다.


 

 

4. 결국은 존재로서의 삶, 그 아름다운 여정

 

                              

 

  이 영화에서는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로 읽힌다. 더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쫓는 시대에, 최정단 감독은 완성을 기약할 수 없는 촬영을 21년간 지속했다. 제작비는 남편의 월급과 대출금, 사재를 팔아 충당하였고, 영화 속 주인공은 여러 차례 촬영을 거부했다.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사건 대신 시간을, 설명 대신 관찰을, 속도 대신 기다림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만든 영화사 ‘시월(時越)’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과 철학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영상 언어로 담아내겠다는 연출 철학을 그 이름에 담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의 방식으로도 평가받아야 하는 영화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새로운 영화 문법을 만들어 낸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를 응시함으로써, 순간이 영원에 이르는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강연 아카이브와 일상의 교차, 절제된 카메라, 더딘 편집의 리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학적 입장이며, 관람객에게 빠른 이해가 아니라 오래 머무는 응시를 요구한다. 사물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응시는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깊은 사유의 바다에서 존재를 길어 올린,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적 서정시”라 할 만하다. 그 시는 김우창이라는 한 인간이 평생을 통해 살아낸 삶의 결이자, 동시에 그의 삶과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1년을 기다린 감독 최정단이 이루어낸 또 하나의 시적 성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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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스승 김우창의 사유의 깊이와 존재로서의 삶, 제자 최정단 감독의 인내와 집념의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가 크다. 세상이 달려가는 길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깊이 천착하며 걸어가는 그 행보가 우리에게 진정한 아름다움과 '심미적 이성'의 울림을 선사한다. 이 멋진 작품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기꺼이 후원시사회에 동참했다. 감사한 기회였다. 앞으로 더 많은 릴레이 후원시사회를 기대한다. 그만큼 더 사회가 따뜻해지리라 믿는다.

   

                                

 

 

  

  ■ 김서현 변호사 ■ 
   사법연수원 32기

   법무법인 비전 파트너 변호사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담당 한도영 변호사 Ⓒ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뉴스레터발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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