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교제폭력 피해자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민고은 변호사

by (사)한국여성변호사회 posted May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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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피해자와 교제관계에 있던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수많은 언론사가 교제폭력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하였고, 그 간 주목받지 못하였던 죽음들이 우리 사회 논의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건은 의대생수능만점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하였고, 수능만점을 받은 의대생이 저지른 강력범죄로 보도되었다. 수능만점을 받은 의대생이 저지른 강력범죄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이후에는 가해자가 저지른 잔혹한 범행의 구체적 내용이 단독보도의 형태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사건에 대한 관심은 사망한 피해자에게까지 이어졌다. 피해자의 유족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자녀와 동생에 대한 장례를 치르기도 벅찬 시기에 온라인상 익명을 앞세워 사건에 대한 억측을 하는 이들에 대한 대응까지 해야했다.

 

우리 사회가 교제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미성숙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가 수능만점을 받은 의대생이건 아니건 이 사건 범죄의 중대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어느 누구도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설령 어떠한 사건인지 아는 이라도 사건에 대한 억측을 할 권리는 없다. 오히려 실정법상 책임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교제폭력이 발생한 맥락을 단순 개인의 차원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설령 이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사람이 범죄 피해로 생명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마땅히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의 수사를 마치고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범죄사실을 명확히 규명하였다는, 피해자가 사망한 후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사망을 막지 못한 그 지점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법원에서의 재판은 어떠할까. 피해자의 유족은 재판 과정에서 처음으로 가해자를 보게 된다. 피해자의 유족은 가해자에게 소리치고 가해자를 비난하고 싶지만 재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재판 과정에서 확인되는 범행의 구체적 내용을 들으며 눈물 흘릴 뿐이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유족이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그것이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에 바라는 유일한 것이다. 피해자의 생명은 물론 보통의 우리 사회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삶까지 앗아간 잔혹한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형사소송절차는 가해자에게 초점 맞추어져 있지만, 적어도 양형 판단에서는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과 피해자의 유족이 겪고 있는 끝이 나지 않는 고통을 깊이 헤아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 발생 이후 진행되는 사후적인 형사소송절차 이외에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률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은 범죄 피해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교제폭력 피해자가, 그리고 사건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의 유족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민고은 변호사 ■ 

법률사무소 진서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
국민일보 독자위원회 위원
 
 
 
 
담당 양진영 변호사 Ⓒ (사)한국여성변호사회 뉴스레터발간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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